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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길

동래읍성지 순례길

동래읍성지 순례길
  • 주소부산시 동래구 명륜동, 복천동, 칠산동, 안락동, 명장동 일대
  • 문의처051)550-4122

기본정보

동래읍성지 순례길 사진1
동래읍성지 순례길사진2

동래읍성지는 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중심지를 둘러싸고 있었던 읍성이다.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의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쌓았다.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삼한시대부터 동래에는 거칠산국(居漆山國)·내산국(萊山國)·장산국(萇山國)·독로국(瀆盧國) 등으로 불린 작은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동래성에 관한 기록은『고려사』에 보이는 1021년(현종 12)에 동래군의 성을 수리한 것이 처음이다.
조선시대에 동래부는 대일 외교상 중시되어 관아의 규모도 크고, 격식이 높았다. 정3품의 부사가 재임하는 왜적 방어의 제1관문이었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산진성과 함께 일본군의 1차 공격목표가 되어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을 위시한 군·관·민의 장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이후 부분 보수되었던 성을 1731년(영조 7)에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그 규모를 훨씬 크게 고쳐 쌓았다.
이 때의 성이 지금 흔적으로 남아 있는 읍성의 기원이다. 증축된 성의 규모는 성곽의 둘레가 약 3.8㎞였다. 읍성에는 동·서·남·북문과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暗門)이 있었고, 각 문에는 문루가 있었다. 동문에는 지희루(志喜樓), 서문에는 심성루(心成樓), 남문에는 무우루(無憂樓), 암문에는 은일루(隱一樓)가 각각 있었다.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翼城)을 두었는데, 앞 쪽의 세병문(洗兵門)과 뒤쪽의 주조문(朱鳥門)을 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계획 등 으로 평지의 성은 철거되고, 산지에만 성곽의 모습이 남아 있다. 지금 성내에는 북문·인생문·동장대·서장대·북장대가 복원되었고 성벽이 부분적으로 복원·보수 중이다.
그 역사적 가치를 보면 오늘날의 부산시청과 같은 동래부동헌을 비롯한 조선시대 관청 건물과 백성들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운 성으로 산지성(山地城)과 평지성(平地城)을 쌓는 기술을 조화시켜 만든 읍성(邑城)으로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백성들이 끝까지 싸우다가 돌아가신 곳으로 오늘을 사는 학생, 일반인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컨텐츠담당자

콘텐츠 관리 :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공보과 송윤정 (051-550-4091)
최근수정일 :
2017.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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